Untitled Document





Category
설교-수석부회장 길자연 목사 06.12.20 11:38
관리자 HIT 2296
예수가 보이는 사람 (요한복음 4장 1-18절)

수석부회장 길자연 목사

  수십 년을 교회에 다녀도  왜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오늘날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른 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들은 오랜 교회 생활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익혀진 신앙의 습관적인 모습은 갖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작 경험해야 할 신앙의 깊은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채 껍데기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외식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간다. 결국 신앙의 영적인 면을 외면한 채 형식적인 신앙생활만 하다가 보면, 자연히 신앙생활의 무료감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고백 없는 신앙, 봉사 없는 신앙, 희생 없는 신앙, 헌신 없는 신앙으로 전락하고 만다.
  모든 제자들이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하건만,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지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한 도마의 완강한 회의주의는 바로 그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신앙에 대한 회의에 빠져 방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가 보이면 그동안 내 신앙을 짓누르고 있던 모든 회의감은 사라지고 놀라울 만큼 성경의 모든 말씀이 다 믿어지게 되고 확신에 찬 신앙으로 바뀌게 된다. 예수가 보이는 것만이 우리의 삶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이 때 비로소 성도는 예배가 즐거워지게 되고 헌신과 봉사의 자리를 넘어 순교적 삶 속에서 주를 위해 목숨도 바치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예수가 보이지 않을 때에 그는 십자가의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보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복음의 핍박자 자리에서 복음의 전파자로 변모했던 것이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순교자로 변모했다. 예수가 보이는 사람과 예수가 보이지 않는 사람은 이렇듯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수가성 여인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본문 말씀은 전혀 예수가 안보이던 그녀의 눈에 어떻게 예수가 보이게 되었는가? 그 영적 변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수가성의 여인은 아무도 없는 야곱의 우물가에 그것도 태양이 중천에 떠있는 그 무더운 정오의 시간에 우물물을 길으려고 야곱의 우물가에 나왔다가 예수를 만났다. 오로지 물에 관심이 있었던 그녀에게는 예수의 존재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예수가 단순한 유대인으로 인식되었을 뿐이다.
  그러면, 그녀가 예수님에 대해서 이런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눈에 예수의 참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예수가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요구하자,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합니까?"라고 배타적인 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그녀가 예수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언제부터인가 예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예수가 보이니까 그녀에게 변화가 온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물동이를 던져버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 가서 많은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나에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이처럼 예수가 안보이던 사람이 예수가 보일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면 예수가 보일 때 일어나는 현상은 무엇인가? 예수가 보일 때 비로소 자신이 보이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으면 성공한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옳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성경이 말한 대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인 것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어야 참 유대인인 것이다. 세상적 성공으로 다된 줄 알고 있지만, 문제는 세상적 성공이 다 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아는 무엇인가? 예수가 보일 때 비로소 보이는 내가 바로 진정한 자아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가 보일 때에 내가 보이는가? 그것은 예수에게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예수님은 말씀 자신이며, 말씀이 성육신하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를 보면 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 1절에서부터 14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이 육신에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다. 예수가 보이면 내가 보이는 이유는 빛되신 말씀(시편 119편 105절)이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기 때문에 예수가 보이면 바로 나 자신이 보이는 것이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의 눈은 가리워져서 예수를 보면서도 예수를 예수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를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은,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을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는 예수의 말씀을 그들이 들었기 때문이며 주님이 주시는 떡을 떼었기 때문이다(누가복음 24장 27-31절).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에게 예수가 보이고 나니 세상이 달라졌다. 자신들이 못 보던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영적인 세계를 깨닫게 되자,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기들에게 보여 지는 예수를 증거 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능력의 말씀으로 수가성 여인에게 접근하셨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씀하셨다(7-18절). 본문 말씀은 예수의 말씀에 의해 서서히 변화되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예수의 말씀 속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기에 이런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예수의 말씀 속에는 변화의 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로 말씀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동질성이다. 그렇다! 물  길러 야곱의 우물가로 나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물을 좀 달라 하시므로 그녀와의 접촉점을 찾으셨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 속엔 우리의 삶의 필요를 채우는 동질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둘째로 말씀 속에는 예수가 들어 있다(13-14절). 즉 예수는 우리의 영적 기갈을 채워주는 영원한 생수이심을 가르쳐 주고 있다. 셋째로, 예수의 말씀 속에는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16-18절). 넷째로 말씀 속에는 예수의 전지성이 들어 있다(17-18절). 갈릴리 바다 속의 물고기의 수효를 환히 알고 계신 주님은 자신의 창조적 전지성으로 그녀의 분륜 관계를 꿰뚫어 알고 계셨던 것이다(18절).
  물을 좀 달라고 하시면서 그녀의 근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접근하신 주님 앞에서 완강히 거부하던 그녀였다. 그랬던 그녀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지난날의 죄악을 회개하게 된 것은 바로 예수의 말씀의 위력 때문이었다. 결국 말씀에 부닥치면 변화되게 마련이다. 말씀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 앞에 서게 되면, 예수가 보이게 되고, 예수가 보이게 되면 내가 보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유의할 점은 여기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예수가 보이면 새로운 영적인 욕구가 생기게 된다. 예수가 보이기 전, 그녀의 관심은 온통 자기뿐이었고 물에 대한 욕구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예수를 발견하고 나서 비로소 그동안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던 영적 욕구가 되살아 난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예배에의 욕구였다. 그래서 그녀는 끓어오르는 참된 예배에의 욕구를 마음에 담아 예수에게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그리고 참 예배의 장소가 어디인지에 대해서 물은 것이다(20절).
그녀의 영적 변화는 여기에만 머문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에 예수가 보이게 되니 영혼이 보였다(28-30절). 그래서 그녀는 그동안 끼고 살았던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외쳐 전도하므로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게 되었다. 이처럼 예수가 보이는 사람의 눈엔 불쌍한 영혼들이 보인다. 그러므로 만사를 재껴두고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을 찾아 길거리로 나서게 되는 것이다.
  예수가 보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예수 때문에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기 때문이다. 돈이 보이고 세상 이권이 보이고, 세상 권세가 보이던 눈에 예수가 보이게 된다면 그것이 곧 변화요, 축복받은 삶인 것이다.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JY

 

 
 

Copyright ⓒ aats.or.kr All right reserved. Produce by S.L.I.M.
서울 동작구 사당3동 산31-3 총신대학교 Tel.(02)3479-0539